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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분쟁사

본래 팔레스타인 지역은 1914년까지 투르크 제국 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 알려진 치열한 독립전쟁 끝에 1918년에는 영국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6년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아랍인들은 영국군에게는 차마 저항하지 못하고 유태인들만 골라 학살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저항할 줄 알았던 영국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합니다. 그래서 윌리엄 필을 보내어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습니다.





필 위원회(The Peel Commission)는 다음과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아랍인과 유태인이 서로 싸우는 이유는 한 체제 아래서 같이 사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아예 두 나라를 만들어 서로 분리 시켜 놓으면 학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군은 이 건의를 채택하여 팔레스타인을 나누어 유태인 자치구, 아랍인 자치구로 나눌 계획을 세웠습니다. 분쟁의 씨앗인 예루살렘에는 영국군이 주둔하여 영국이 직접 통치하기로 했습니다. 유태인은 이 계획에 찬성했으나 아랍인은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랍인들이 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을 완전 차지하고 유태인을 영구 추방하는 것이습니다.

영국은 아랍인들을 상대로 divide & conquer 전술을 쓰는 것으로 바꾸었고 이 정책의 영향으로 아랍인들은 자기들끼리도 단결이 안되는 상황이 됩니다.






1947년, 나라를 세울 필요성을 느낀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UN에서는 고심 끝에 아랍인들에게 분할을 제안했습니다. 예루살람 주변 지역을 전부 아랍인들에게 내주는 것을 골자로 한 아랍인들에게 후한 제안이었습니다.






유태인들은 동의했으나 아랍인들은 반대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분할 안은 또다시 무산되었습니다.





영국은 자기들이 통치하던 영국령 팔레스타인 영토를 유태인들에게 내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건국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팩트인데, 처음 이스라엘의 영토에 예루살렘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의 존재에 아랍인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들이 취한 수단은 전면전으로 유태인 씨를 말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발발한 전쟁이 바로 제1차 중동전쟁(1st Arab-Israeli War)입니다.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예멘이 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했고

레바논, 파키스탄, 수단 등이 이슬람 연합군을 지원했습니다.



1차 중동전쟁은 9개월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헐값으로 들여온 낡은 무기들을 대충 손봐서 타고 침략자들과 싸우러 나가야 했던 이스라엘국방군(IDF: Israeli Defense Force)은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랍 연합군을 물리친 것은 물론이고 예루살렘까지 수복했습니다.







그 후로  이슬람 국가들은 2번 더 전쟁을 일으켰지만 번번히 이스라엘에게 패배했습니다.


전쟁으로 굴복시킬 수 없었던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리즘과 석유를 이용한 경제보복으로 맞섰습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으로 불리우는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이스라엘은 그 공세에도 버텨냈습니다.


오히려 1967년, 이스라엘은 주변나라들을 달래기 위해 요르단에 웨스트뱅크(서안지구)를 돌려주고 이집트에 가자(Gaza)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처음 그들에게 제안했던 분할 안을 다시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수단 하르툼에서 개최된 아랍정상회담(Arab League Summit)에서 '이스라엘과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결의안을 채택합니다. 요르단과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평화안을 거절함으로서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는 다시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번째 분할 안도 물건너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2000년,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바락과 팔레스타인 대표 야세르 아라파트는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중재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에 대한 회담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에후드 바락은 "가자 지구 전부, 웨스트뱅크의 90%를 내주고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로 인정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아라파트는 거절했다.


빌 클린턴이 "14일간의 회담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측이 말한 건 no가 전부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팔레스타인의 입장은 강경했습니다.



2005년, 가자 지역을 방어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이스라엘 국방군은 가자 지역을 포기하고 철수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 지역을 차지하고 거대한 빈민굴을 형성했습니다. 그 곳은 아라파트보다 훨씬 과격한 조직 하마스 세력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2008년, 하마스의 선동으로 이슬람인들은 아직까지도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인들을 모조리 내쫓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는 2000년 때 했던 것과 똑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는 역시나 거절했습니다. 아바스 대통령은 하마스 당원은 아니었으나 이미 거대 야당으로 떠오른 하마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마스는 지금도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2008년이 민주당의 오바마 시절이었기에 이스라엘도 '미국을 믿을 수 없으니 우리의 힘으로 진압하자'고 강경 대응을 취해왔습니다.


한편 중동에서 이스라엘 이외의 파트너를 찾던 오바마는 재임 기간 중 이란과의 평화 조약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이란의 입김이 닿는 조직 헤즈볼라에 대한 제재를 느슨하게 하는데 동의했습니다. 이란은 이스라엘 불바다를 아직도 외치는 나라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난리가 난 오바마의 헤즈볼라 스캔들은 2018년 가장 충격적인 스캔들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이스라엘과의 유대를 굳건히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에 두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랍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 결정에 반대하는 결의안이 UN에서 채택되었는데, 한인권 결의안에는 기권만 하던 우리나라는 이 결의안에는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미국이 찬성표 던지는 나라들을 기억해두겠다고 경고했는데도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을 동정하는 세력들은 반미세력들 입니다. 반미세력들은 미국이 유태인들의 노예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울하게 침략당한 피해자로만 묘사합니다. 평화 제안을 아랍 측에서 무려 4번이나 거절했다는 사실과 아랍 국가들이 먼저 전면전을 일으켰는데 패배했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빼버립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아랍 국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비난하지만 정작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점 입니다. 팔레스타인에 지원해주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유태인들 입니다. 하마스에 동조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직업을 갖고 이스라엘 영토에서 정착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주류를 이룬 가자 지역은 범죄율도 높고 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마스는 범죄 소굴 가자 지구를 저항의 땅, 눈물의 땅으로 포장하며 세력화 시키고 있을 뿐 입니다.



앞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확한' 역사를 알아 보았습니다. 유태인을 용납하지 못하고 항상 폭력을 선택해온 것은 아랍인들이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외교적으로 가장 신의가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이죠. 언제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찾아올까요? 이 분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가 나타난다면 노벨 평화상을 줘도 모자르지 않다라고 생각합니다.